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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식의 재구성> -조선희-
    비소설/국내 2023. 12. 19. 10:32

     

     

    1.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한국 사회는 인구밀도의 물리적 조밀함보다도 미디어 포화상태의 심리적 조밀함이 더 문제가 되었다. 또한 자부심과 열등감 사이에서 널뛰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은 지난 100년 사회발전의 속도만큼 변화무쌍하고, 바깥의 힘에 휘둘린 역사만큼 남들의 평가에 예민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가기 쉬운 취급주의(fragile)’ 물품과 같다. p.18

     

    2. “행복해지기만 원하면, 쉽게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하며 이는 대부분 어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p.104

    3. 영화관 예의에 대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특별한 언급도 있다. “망연자실한 리서치 결과 10대들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로 2시간 동안 휴대폰을 꺼놔야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1위를 차지했다. 나는 영화의 적이 휴대폰이 될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컴컴한 영화관에서 대형 스크린에 몰입할 때 영화의 가치는 온전히 전달될 수 있건만 몰입을 거부당한 영화라니! p.115

    4. 1987년 이후 30년에 걸쳐 한국 사회는 폭력 사회에서 비폭력 사회로 이동했다. 군대에서 구타,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고 2020년 자녀에 대한 친권자의 징계권에 관한 민법 915조가 폐지되면서 가정이라는 마지막 성역도 사라졌다.

     민주주의는 폭력을 금지시키는 한편 표현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렇게 해서 신체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언어폭력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사회가 되었다. ‘공손한 폭력 사회를 벗어나 무례한 비폭력 사회로 넘어온 것이다. 개인에게 잠재한 공격성은 근육에서 입으로 전이됐다. 정치논평이 국민오락이 되었다. p.153

     

    5. 근대 이후엔 삶의 모든 조건이 선택의 대상이자 쟁취의 대상이 되었다. 자유가 늘어나면 불안도 늘어나고, 불안의 크기는 욕망의 크기에 비례한다. 시장 속에 홀로 던져진 인간은 고독하다. 에리히 프롬은 독일인들이 자유와 불안과 고독으로부터 도피해 나치의 깃발 아래로 달려갔다고 보았다. p.209

     

    6.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파시즘이 어떻게 위대한 국민을 매혹했는가를 분석한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의 도피심리, 권위주의, 복종과 지배의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 독립된 자아를 버리고 타인과 집단에 자신을 융합시켜 힘을 얻으려는 마조히즘, 타인을 지배하고 도구화하고 고통에 빠뜨림으로써 힘을 확인하려는 사디즘, 그 두 가지의 공생인 것이다. 개인의 관능적, 정서적, 지적인 확장이 방해되거나 생체 에너지가 억압됐을 때 나타나는 파괴성은 때로 사랑, 의무, 양심, 애국심같은 근사한 거짓말로 합리화되기도 한다.

     한 사회의 평정심이란 살짝만 찢겨도 핏방울이 튀어나오는 얇은 피부와 같다. 나치는 현대 독일인의 트라우마로 잠재해 있다. 통일 이후의 혼란기에, 코로나라는 재난 앞에서, 극우 테러를 만났을 때, 정치가들이 국민들의 절제를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데서 나치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회적 위기가 자신들을 어떤 집단광기로 몰아갈까 불안한 것이다. 교육과 규범과 실정법이라는 첩첩의 바리케이드로 차단하고는 있지만 그 의식의 구조물 밑에서 출렁이는 집단무의식이 내심 두려운 것이다. p.263

    7.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걸음이라도 떼는 게 낫다.” (블리 브란트) p.265

     

    8. 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이영희) p.375

     

    9. 근대화란 철저한 실용주의자가 되는 과정이었다. 경쟁에 도움 되는 것은 취하고 쓸모없는 것은 버리는 반복훈련인데, 일종의 자동차 경주와 같아서 속도에 지장을 주는 부품들은 제거하고 차체의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만든 것이다. ‘쓸모바깥에 어떤 심리적 정서적 여유 공간이 만들어지는 법인데, 그런 여유 같은 것은 경제성장가도를 전력질주하는 과정에서 길가에 흘리고 와버렸다. 그렇게 해서 경쟁력은 얻었지만 우리는 대대로 집안에 가보처럼 내려온 어떤 귀한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p.473

     

    10. 에고를 지탱할 무엇, 생각의 체계와 자기중심을 갖는 데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섭렵하는 능력보다 천천히 깊이 생각하는 연습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p.501

     

    11. 품격 없는 사회의 증상은 무엇일까?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고,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부족하며, 제도와 법령을 양산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유지의 비극이 만연하는 사회다. 그래서 갈등 사회, 분노 사회가 되는 것이다. (...) 품격 있는 사회란 개인과 공동체 간, 그리고 시스템과 생활 세계 간에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사회다. (...) 개인은 자유와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 발전하지만 그것이 공동체적 통합성을 유지하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아야 사회의 품격이 유지되고 지속 가능해진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이재열) p.530

     

    12.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pp.54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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