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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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정홍택 옮김-소설/국외 2023. 12. 8. 12:55
1. 모든 인간의 생활은 자신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고, 그 길을 가는 시도이며 좁은 길의 암시이다. 일찍이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그 자신이 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으로는 그 자신이 되어 보기 위해 어떤 사람은 다소 우둔하게, 또 어떤 사람은 보다 명석하게, 자기의 힘이 닿는 만큼 노력한다.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누구라도 자신의 출생의 잔재를, 태고 적의 정액과, 알의 껍질을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있다. 끝끝내 인간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나 도마뱀, 개미에 머물러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머리는 사람이지만 몸은 물고기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누구나 인간을 향해 던져진 자연이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심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심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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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비소설/국외 2023. 11. 1. 11:38
1. 참 이상하면서도 대단하다. 너무도 아름답고 강렬하게 타오르던 여름마저 때가 되면 흘러가 버린다는 것은.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갑작스런 추위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 방 안에 틀어박히게 되는 순간이 찰나처럼 다가오는 것도. 그렇게 앉아서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면 곧 희미하고 차갑고 빛이 없는 상태에 둘러싸이게 된다. 사람들도 그 사실을 금세 깨닫는다. p.108 2. 내가 만약 나무라면 나는 아직도 거기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미 지나간 일들을 새삼 불러오려고 소망할 수는 없다. 물론 이따금 나의 꿈과 내가 쓰는 시 속에서는 그런 시도를 해 보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p.165 3. 사실 우리가 찾으려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인간적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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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헤르만 헤세-비소설/국외 2023. 11. 1. 11:36
1. 거대한 여름목련나무를 북쪽 지방의 봄목련나무와 혼동하면 안 된다. 여름목련나무는 그처럼 아름답긴 하지만 늘 나의 다정한 친구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어떤 계절에는 근심 어린 생각에 잠겨, 적대감을 갖고 그 나무를 바라보던 때도 있었다. 그 나무는 10년 동안 내 이웃으로 지내면서 자라고 또 자라 무성하게 뻗어 나갔다. 봄가을 몇 달 동안은 아침의 한 줌 햇빛도 그 나무에 가려 내 방 베란다에 궁둥이를 붙이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나무는 마치 거인 같았다. 어떤 때 보면 수액을 철철 내뿜으면서 격렬하고 무성하게 성장하는 것 같다. 강인한 힘으로 신속하게 위로 뻗쳐 나가면서도 때로는 어딘지 눅눅하게 흐늘거리는 젊은이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한여름 꽃피는 시절이 되면 나무는 화려하고 충만하고 부드러운 위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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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여름> -헤르만 헤세-비소설/국외 2023. 11. 1. 11:34
1.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다. 나는 혼자지만, 혼자 있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는 않는다.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햇볕에 푹 익을 용의가 있다. 나는 숙성되기를 갈망한다. 죽을 용의도 있고, 다시 태어날 용의도 있다. 세상은 그 이후로 더 아름다워졌다. (『방랑』중에서, 1818~19년) p.26 2. 나는 배낭을 나뭇가지에 걸고 입고 있던 옷들을 성급히 벗는다. 뜨겁게 달궈진 자갈 위에 맨발로 서니 발꿈치가 견디기 힘들다. 얕은 물속으로 발을 들여 놓으니 다기처럼 따스하다. 먼저 물밖에 몸을 내밀고 수영을 하니 약간 서늘함이 느껴진다. 나는 더 깊이 물속의 검푸른 심연 속으로 몸을 넣었다. 등을 물 위에 대고 오랫동안 떠 있었다. 파도가 변덕스럽게 내 눈과 입 위로 철썩 철썩 스쳐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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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 -헤르만 헤세-비소설/국외 2023. 11. 1. 11:26
1.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진실로 중요시해야 할 내면의 세계를 너무 일찍 버리고 근심과 원망, 그리고 목적에 둘러싸인 가지각색의 생각 속에서 일생 동안 혼돈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결코 그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다시금 내면으로, 영혼의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다. p.35 2. 저 아름다운 여름날 저녁에 나는 친숙한 사람들만 모이는 정원회합의 일원으로 겔프케 박사의 초대에 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일을 나는 원치 않았다. 나는 그런 일에 너무 지쳐 있었고 무관심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내가 잘 지내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마지못해 거짓말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p.68 3. 나에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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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비소설/국외 2023. 11. 1. 11:23
1.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일은 그렇게 조바심을 내는 것이 우리가 겨우 여가 시간을 누리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여가 시간에도 서두르고 바삐 움직이는 것이 일을 할 때보다 신경을 덜 쓴다거나 덜 피로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빠르게’가 되었다. 그 결과 쾌락은 점점 더 많아졌지만 즐거움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p.13 2. 정해진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10시간 정도 푹 자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하고 나면 자느라 소비해 버린 시간과 그로인해 잃어버린 쾌락을 대체할 만큼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될 것이다. p.16 3. 단지 무엇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누구나 사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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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헤르만 헤세-소설/국외 2023. 10. 31. 13:42
1. 몇 주일의 세월이 견딜 수 없이 따분하게 흘러갔다. 이 분노와 갈등으로 얼룩진 절망적인 시간 때문에 내 젊음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행복한 꿈이 삶에서 그토록 빨리 와해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분통도 터뜨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돌발적이고 강렬하게 성장한 데에 또한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pp.50-51 2. "그런 사랑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아니면 비참하게 하는지 물어도 될까요? 아니면 그 둘 다입니까?“ “아,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가 고통과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 있는 것 같아요.” p.84 3. 죽음은 냉정했지만, 뛰쳐나간 아이를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