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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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소설/국외 2023. 10. 24. 11:27
1.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때부터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낱낱이 적어 내려가 보라.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해도 좋다. 되도록 그 어휘들과 기억들을 당신에게 떠오르는 그대로 적으려고 노력하라. 당신이 쓴 것이 그다지 좋은 내용이 못 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걸 읽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로, 2학년, 3학년 때까지 조금씩 옮겨가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누구였고, 반 아이들은 누구였는가? 당신은 무슨 옷을 입었던가? 당신이 질투했던 친구나 갖고 싶었던 물건은 없었는가? 이제 약간 더 가지를 뻗어 보자. 그 시절 당신의 가족들이 휴가를 떠난 적이 있는가? 이러한 것들을 종이에 적어 보라. (...) 더 구체적인 것들도 짜내어 보라. 거기서 사람들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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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소설/국외 2023. 10. 24. 11:03
1. 키스도 하고 서로를 안기도 하지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다면 차라리 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처절한 갈망은 채워지는 일이 없었다. p.18 2. 우리는 일 년에 몇 번 어쩌다 기억났다는 듯이 만났을 뿐 관계가 연애로 발전될 기미는 거의 없었다. 다만 이 사람이 만나자고 한다는 건 나를 신뢰하며 정말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처럼 착실한 사람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를 향한 동경이 부풀었다. p.68 3. 우리 부모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다가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간다. 그런데도 이 가게에 남아 있는 그의 잔영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세상은 온갖 사람들의 잔영으로 가득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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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마음의 온도> -김옥림-소설/국내 2023. 10. 24. 10:55
1. (...) 가난해서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가난, 즉 ‘청빈한 삶’을 말하는 것으로 가진 자들이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라고 하겠다. p.18 2. 단단한 돌이나 쇠는 높은 데서 떨어지면 깨지기 쉽다. 그러나 물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는 법이 없다. 물은 모든 것에 대해 부드럽고 연한 까닭이다. (노자) p.25 3. 용서란 하기는 어려워도 하고 나면 마치 무더운 여름날 맑고 시원한 물에 목욕을 하고 난 것처럼 날아갈 듯 개운하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베풂이라기보다 스스로에 대한 마음을 바로잡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p.27 4. “살아남은 것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들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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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소설/국외 2023. 10. 24. 10:53
1. “사람들은 자기 인생보다 남의 인생을 더 많이 산다.” (바르베 도르비이) p.59 2. 벽으로 드나드는 그 남자는 더 이상 숨길 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는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가 없었고, 따라서 이제 벽으로 드나드는 것에 아무런 흥미를 느낄 수 없다. 곳곳에 텔레비전이 있고, 집에도 카메라들이 있다. 촬영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을 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걸핏하면 자신들의 은밀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침실로 몰래 들어갈 필요가 없다. 이제 사생활은 소멸 위기에 처한 개념이다. pp.145-146 3. 정말 실패한 것일까? 그는 이 참담한 실패를 자신이 직접 완성시킴으로써 명예를 보전할 것이었고, 자신의 패배를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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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손-소설/국외 2023. 10. 24. 10:50
1.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른 한차례의 울음이 있었다. 그것은 차분하고 진정한 울음이었다. 좋은 울음, 둥근 관을 씻어내는 물, 오히려 홈통의 나뭇잎과 솔잎 따위를 깨끗이 씻어내리는 것 같은 울음.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거하고 더 나은 것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방법으로서의 울음. 그것은 마치 부당한 생각을 모두 날려 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는 기분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더 나은 것들. 새로운 출발. p.161 2. 그날 밤에는 비교적 푹 잤다. 나는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잠을 잤다. 낮은 위치가 공격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잠. 계획을 가진 사람의 잠. p.170 3. 방향을 돌려놓겠다고 갑자기 애쓴다고 해서 강물의 흐름을 바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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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E-Book -조남주-소설/국내 2023. 10. 24. 10:46
1. 엄마는 늘 저주처럼 말하지, 나중에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나는 나 같은 딸로 태어난 게 아니라 나 같은 딸로 키워진 거야. 엄마에 의해서. 2. “고생 많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냥... 그냥, 너 그러다 후회할까봐 그래.” 창 너머로 내가 커피를 마시고 베이글을 먹었던 커피전문점이 보였다.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랑 싸우고 울고 원망하고 토라지고 화해도 해봤으니까. 그 순하던 엄마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바닥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다 봤으니까. 피를 닦고 토한 것들을 닦고 똥오줌도 닦아봤으니까. “엄마는 유난히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시한부 소녀가 아니야. 이건 드라마가 아니야, 오빠.” 3. 지혜도 선생님께 지목이 되었는데 회사에 다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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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소설/국외 2023. 10. 23. 10:40
1. 물론 죽음은 늘 유혹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게 복종하고 싶은 유혹처럼 보였다. 죽음에는 끝이 없는 희가극 같은 청춘기에 퇴폐적 또는 반항적 자세를 부여하는 힘이 있다. 또한 죽음에는 원초적 폭력과 자해의 익숙한 유혹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마치 가업을 이어받는 것처럼 순응의 양상을 띠었다. 정말 죽음은 빈틈이 없었다. p.26 2. 별 수 없이 해는 새로운 것 없는 세상에 비쳤다. p.134 3. 저녁이 통째로 역대급 지겨운 시간이 될지 모른다. 패트릭은 지금 혐오와 욕망 사이의 어떤 침 흘리는 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여자로 하여금 자신이 무척 매력적인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메리앤은 그런 상태를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처량한 남자들 맞은편에 앉아 있느라 인생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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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소설/국외 2023. 10. 23. 10:22
1. “그래도 북적거리던 시절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활기가 탱글탱글한 덩어리처럼 손에 만져질 듯 기운 넘치던 시절에. 밤길을 걸어만 다녀도 축제 같은 기분이었어. 관광지라서 참 좋았는데. 가을이 오면 여름철에 바빴던 동네 사람들이 좀 멍하고 축 늘어져서 휴식에 들어가는 느낌도 정말 좋았고. 그런 걸 보여 주고 싶었어.” p.56 2. 멀리 떠나가는 배가 콩알만 하게 보인다. 한 줄기 하얀선을 남기고. 마치 하늘을 나는 비행기처럼 바다 위로 멀어지는 것을 우리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모든 것이 금색으로 빛나고,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거렸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빛나고, 너무 아득해서 가물가물했다. p.76 3. 그 등이 내 꿈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오직 그 울퉁불퉁 억센 손을 잡을 때가 내 온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