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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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2> -이수연 대본집-소설/국내 2023. 11. 3. 10:36
1.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예요. 막 죽일 xx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고. 그냥 흐르는 대로 사는 거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야. / 그렇게 흐르기만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곳에 닿아버리면요? p.315 2. 부정부패가 해안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십 수백의 목숨이다. 처음부터 칼을 뺏어야 했다. 첫 시작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조차 칼을 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시간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사람의 피다. 수많은 사람의 피. 역사가 증명해준다고 하고 싶지만 피의 제물은 현재진행형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미 치유시기를 놓쳤다. 더 이상 침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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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소설/국외 2023. 11. 3. 10:33
1. 전쟁은 단순히 수만 명, 수십 만 명의 청년들만 죽이는 게 아냐.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 속에서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버린다네. 사람이 전쟁을 많이 겪고 나면 남는 건 짐승 같은 성질뿐이야. p.53 2. 그는 이디스의 새로운 행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활동은 그에게 아주 조금 성가실 뿐이었고, 그녀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 필사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된 책임은 그에게 있었다. 그녀가 그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지 못했으니까. 따라서 그녀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그가 따라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p.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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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소설/국내 2023. 11. 3. 10:26
1. 힘이 있다면 누가 희망 따위를 바라겠는가.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희망이 필요한 이유는 힘없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p.12 2. 이 세상과 더불어 웃든지, 아니면 혼자 울든지. p.28 3. 아빠가 살았던 42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별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그 빛들을 나눠서 쪼일 수 있었다면 아빠는 평생 매초당 7조5499억5047만2325개의 별빛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이에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1초였을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1초라는 걸 알았더라면 아빠는 울지도 않았을 텐데요. 소주를 마시지도 않았을 거고, 약병을 들고 죽겠다고 아들에게 소리치지도 않았을 테죠. 아빠 인생의 1초가 그렇게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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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소설/국외 2023. 11. 3. 10:16
1. 릴라는 자신이 경계의 해체라고 부르는 현상을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그 느낌이 완전히 새로웠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자신이 다른 사람, 물건, 숫자, 글자 따위의 경계를 파괴하며 그 속으로 이전되는 듯한 느낌을 몇 번인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p.115 2.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린 시절 꿈꿔왔던 부의 의미가 다시 한 번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아씨들』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 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 같은 돈의 이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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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스무라 기쿠코-소설/국외 2023. 11. 3. 10:09
1. ‘미래가 지금인가’ 하고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한 킨크스의 곡에 집중하며 눈을 감는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 운동선수였을지도 만화가였을지도 모르고 파일럿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샐러리맨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항의 전화를 받기도 하고, 얌전히 있으면 계속해서 일을 떠맡기도 하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이 괴롭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 있고, 제법 좋은 추억도 있고, 새해 연휴에 만날 친구도 있다. 그런 거야 어렸을 때와 거의 똑같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뭐가 나쁜가. pp.17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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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조디 피코-소설/국외 2023. 11. 3. 10:05
1. 로드아일랜드주의 자동차 중 거의 1/3이 뒤 범퍼에 빨간색과 흰색으로 된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 주에서 발생한 대형 범죄의 희생자를 기리는 스티커다. '내 친구 케이티 드큐벨리스는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내 친구 존 시송은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이런 문구가 쓰인 스티커는 학교 행사나 모금 행사, 미용실 등에서 나눠준다. 사망한 아이를 아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저 연대감에 혹은 이러한 비극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기쁨을 남몰래 누리기 위해 이 스티커를 붙인다. p.115 2. 우리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으며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한다. p.129 3. “사라, 케이트는 네가 와인 한 잔 더 마신다고, 호텔에서 하룻밤 묵는다고 혹은 터무니없는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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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소설/국내 2023. 11. 2. 11:20
1. 마흔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까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p.68 2.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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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의 앵무새> -줄리언 반스-소설/국외 2023. 11. 2. 11:01
1. 가장 확실한 쾌락은 기대의 쾌락임을 플로베르는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삭막한 성취의 다락방에 뛰어들 필요가 누구에게인들 있겠는가? p.17 2. 만족을 느낀 후에는 싫증을 내고, 사랑이란 단지 정욕뿐이라고 말하는 그런 천박한 인간들과 나를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니다. 나의 마음속에 생긴 것은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의 성들은 세워지자마자 이끼가 자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성들이 완전히 무너지더라도 폐허가 될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p.49 3. 나의 마음은 옛날 그대로이지만, 내 감정의 한쪽 면은 날카로워지고 다른 면은 무디어졌다. 너무나 자주 날을 갈아 금이 가고, 쉽게 부러지는 낡은 칼과 같다. p.55 4. 그 대신 그는 무엇을 배웠는가? 그는 삶이란, 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