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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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유카와 유타카, 고야마 데쓰로-비소설/국외 2023. 11. 13. 09:44
1. ‘트루먼 카포티는 소설 속에서 영화를 종교적 의식으로 비유하는데, 그런 느낌이 없지도 않다. 어둠 속에 홀로 스크린과 마주앉아 있으면, 어쩐지 자신의 혼이 잠정적인 장소에 잠시 치워진 듯한 기분이 된다. 그러한 기분을 맛보는 일은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이 이른바 영화 중독이 아니겠는가.’ (하루키) p.109 2. 악은 확고부동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타자로서 존재할 때, 그때 악이라는 측면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악이란 악의라든가 인가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A라는 한 사람을 둘러싼 B, C, D라는 타자는 각각의 존재로서 악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원초적인 악의 모습이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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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외국어> -조지영-비소설/국내 2023. 11. 10. 13:22
1. 나는 처음처럼 혼자였지만, 그전의 혼자와는 조금 다른 혼자가 되었다. p.62 2. 일상생활의 작고 미세한 장면들과 틈새들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그리는 에세이스트 하루키는, 단정하고 깔끔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맥주 한 잔 청하고 싶은 사려 깊은 어른 같다. p.118 3. 동일본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된 사람들이 보여준 절제와 인내는 정말 놀라웠다. 유수의 매체에서 “인류 정신의 진화”라고 극찬을 했지만, 극도의 불안 상황 속에서도 새치기 한 번 없고, 버려진 쓰레기 한 조각이 없고, 심지어 우는 아이의 칭얼거림조차 없는 비현실적인 정경에 나는 어쩐지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는 불가항력의 파괴와 절멸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것 같은, 오래전에 예정된 수순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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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키워드. 왕을 말하다> -강응천-비소설/국내 2023. 11. 10. 13:21
1. 임금을 뜻하는 한자 ‘王’의 유래에 관한 설 가운데 하나는 도끼의 모양을 본떴다는 것이다. 자루에서 분리해 놓고 보면 도끼는 날과 몸통, 그리고 자루를 끼우는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다. 王은 바로 도끼의 이 세부분을 가리킨다. (...) 왕을 도끼에 비유할 때 이 도끼는 생사여탈권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즉, 왕은 도끼를 들고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 절대 권력자라는 의미다. p.12 2. 왕을 죽일 정도로 강력한 귀족들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고조선은 귀족의 권력이 왕을 압박하는 귀족제 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p.21 3. 황제가 내리는 도장을 ‘印’이라 하고, 이 도장을 허리에 찰 때 매는 끈을 ‘綬’라 한다. 이와 함께 황제는 의복인 ‘衣’와 모자인 ‘幘’을 내렸다. 이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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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인상주의 편> -진중권-비소설/국내 2023. 11. 10. 13:16
1. 고전미술에는 식별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p.17 2. 고전미술의 목표는 그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히 묘사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는 자연주의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자연주의’가 그저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데 머물렀다면, ‘고전주의’는 그 수준을 넘어 사물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p.23 3. 고전미술이 원근법적으로 구축된 공간 속에 소묘와 채색을 통해 실물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묘사를 한 것도 실은 환영 효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교훈을 더 생생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고전미술의 중요한 특성이 도출된다. 즉,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이라는 것이다. p.28 4. 18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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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사생활> -김정욱-비소설/국내 2023. 11. 10. 13:15
1. ‘축구는 못 해.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건 계속할 수 있어. 충분하지 않겠지만 너무 슬퍼 마. 바라는 답을 주지 못해 미안해. 축구공을 잃은 너에게 인생엔 다른 즐거운 일도 많다는 걸 아무리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니. 하지만 언젠가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길 바랄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놓치고, 꿈을 좇다가 넘어져. 너는 그걸 조금 더 이르게 경험한 것뿐이야. 먼저 경험한 자에게 지혜와 평온이 찾아오길 바란다.’ p.83 2. 그곳에는 환자를 생각하는 뜨거운 마음도, 질병에 다가가는 냉혹한 뇌도 없고 그냥 피로에 전 시커먼 구멍만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억지로 끌고 가봤자 남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투정뿐이다. 오늘은 뭘 해야 어제와 다를까를 고민해볼 것이다. 스스로 다독이고 다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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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혹은 연상> -윤기호-비소설/국내 2023. 11. 10. 13:12
1. 요령이 꼭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p.40 2. 인문학이란 ‘양쪽 눈’으로 ‘주변’을 보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은 인문학적 지식이 아니라, 호젓한 길에서 행인을 만났을 때 인사 없이 지나치면 뭔가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p.50 3. 문법에는 안 맞지만 ‘살다’의 수동형은 ‘살아진다’이다. ‘살아진다’와 ‘사라진다’의 발음이 같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p.74 4.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까워 올 무렵, 처음 피어난 꽃은 바래기 시작했다. 까칠하고 허옇게 시든 상태에서 겨우 꽃 모양만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붙어 있다. 그래서 문득 생각한다. 오래 피어 있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구나. p.90 5. 아마추어는 일에 서툰 사람이 아니다. 그 일 아니라도 다른 할 일이 있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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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이승우-소설/국내 2023. 11. 10. 13:11
1. 시간은 있던 것을 없게 한다. 무화(無花)에의 권능. 2. 나무를 깎을 때는 나무를 깎는 일만 중요했고 구멍을 뚫을 때는 구멍을 뚫는 일만 중요했다. 몰입하는 자의 세계에서는 부분이 전부였다. p.36 3. 그들은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생활의 궁핍과 욕망의 억제를 견딜 수 있었다. 아버지는 꿈의 자본이고 욕망의 설계도였다. 아버지 안에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들 앞에 나타나기 전에 아버지는 위대했다.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위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 앞에 나타났고, 그들 앞에 나타난 아버지는 초라했고 볼품없었고, 부상을 입은 패잔병 같았고, 조금도 위대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들은 말을 잃어버렸다. p.74 4. 각설하고, 상상 속에서, 꿈속에서, 소설 속에서 말고, 사람을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