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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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소설/국외 2023. 10. 24. 11:03
1. 키스도 하고 서로를 안기도 하지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다면 차라리 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처절한 갈망은 채워지는 일이 없었다. p.18 2. 우리는 일 년에 몇 번 어쩌다 기억났다는 듯이 만났을 뿐 관계가 연애로 발전될 기미는 거의 없었다. 다만 이 사람이 만나자고 한다는 건 나를 신뢰하며 정말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처럼 착실한 사람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를 향한 동경이 부풀었다. p.68 3. 우리 부모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다가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간다. 그런데도 이 가게에 남아 있는 그의 잔영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세상은 온갖 사람들의 잔영으로 가득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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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비소설/국외 2023. 10. 24. 10:59
1. 중심부의 시선은 가장자리를 중심의 변방으로 편입시키려는 욕망에 오염되어 있다. 이 욕망은 과학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권력이고, 권력은 인간의 눈에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씌운다. 인간은 좁은 새장에 갇혀 있거나 짧은 목줄에 바싹 묶여 있다. 이 부자유는 이제 제도화된 일상이다. (김훈 추천사 中) p.8 2. 나이듦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놀랍기 때문이다. 내 생애가 완전한 파노라마로 들어오는 것이다. 상쾌한 산들바람이 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커트 보니것의 작품 「자동 피아노」에서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자리에서는 한가운데서 보지 못한 온갖 것을 볼 수 있다.” 돌아보건대, 나는 내게 지루함과 영감, 분노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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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마음의 온도> -김옥림-소설/국내 2023. 10. 24. 10:55
1. (...) 가난해서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가난, 즉 ‘청빈한 삶’을 말하는 것으로 가진 자들이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라고 하겠다. p.18 2. 단단한 돌이나 쇠는 높은 데서 떨어지면 깨지기 쉽다. 그러나 물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는 법이 없다. 물은 모든 것에 대해 부드럽고 연한 까닭이다. (노자) p.25 3. 용서란 하기는 어려워도 하고 나면 마치 무더운 여름날 맑고 시원한 물에 목욕을 하고 난 것처럼 날아갈 듯 개운하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베풂이라기보다 스스로에 대한 마음을 바로잡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p.27 4. “살아남은 것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들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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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소설/국외 2023. 10. 24. 10:53
1. “사람들은 자기 인생보다 남의 인생을 더 많이 산다.” (바르베 도르비이) p.59 2. 벽으로 드나드는 그 남자는 더 이상 숨길 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는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가 없었고, 따라서 이제 벽으로 드나드는 것에 아무런 흥미를 느낄 수 없다. 곳곳에 텔레비전이 있고, 집에도 카메라들이 있다. 촬영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을 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걸핏하면 자신들의 은밀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침실로 몰래 들어갈 필요가 없다. 이제 사생활은 소멸 위기에 처한 개념이다. pp.145-146 3. 정말 실패한 것일까? 그는 이 참담한 실패를 자신이 직접 완성시킴으로써 명예를 보전할 것이었고, 자신의 패배를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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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손-소설/국외 2023. 10. 24. 10:50
1.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른 한차례의 울음이 있었다. 그것은 차분하고 진정한 울음이었다. 좋은 울음, 둥근 관을 씻어내는 물, 오히려 홈통의 나뭇잎과 솔잎 따위를 깨끗이 씻어내리는 것 같은 울음.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거하고 더 나은 것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방법으로서의 울음. 그것은 마치 부당한 생각을 모두 날려 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는 기분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더 나은 것들. 새로운 출발. p.161 2. 그날 밤에는 비교적 푹 잤다. 나는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잠을 잤다. 낮은 위치가 공격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잠. 계획을 가진 사람의 잠. p.170 3. 방향을 돌려놓겠다고 갑자기 애쓴다고 해서 강물의 흐름을 바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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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메이커스> -데이비드 에반스, 리처드 슈말렌지-비소설/국외 2023. 10. 24. 10:47
1. 매치메이커는 원자재를 사지 않는다. 같은 걸 원하는 사람들이 한데 뭉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아가 매치메이커가 각 집단의 멤버에게 파는 것은 다른 집단의 멤버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다. 2. 많은 경영 전략 전문가들은 이 사례가 보여준 확실한 교훈을 가슴 속에 새겼고,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키는 산업에서 ‘선점자의 이점’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소비자의 눈에는 더 큰 게 항상 더 좋아 보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효과를 갖고 있는 기업과 표준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기업이 모든 것을 얻는 승자가 되려면 더 먼저 시작해서 리드를 지키는 게 낫다. 직접 네트워크 효과가 아주 약간의 리드 효과를 확대해주기 때문에 선점자의 이점은 늘 효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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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E-Book -조남주-소설/국내 2023. 10. 24. 10:46
1. 엄마는 늘 저주처럼 말하지, 나중에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나는 나 같은 딸로 태어난 게 아니라 나 같은 딸로 키워진 거야. 엄마에 의해서. 2. “고생 많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냥... 그냥, 너 그러다 후회할까봐 그래.” 창 너머로 내가 커피를 마시고 베이글을 먹었던 커피전문점이 보였다.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랑 싸우고 울고 원망하고 토라지고 화해도 해봤으니까. 그 순하던 엄마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바닥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다 봤으니까. 피를 닦고 토한 것들을 닦고 똥오줌도 닦아봤으니까. “엄마는 유난히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시한부 소녀가 아니야. 이건 드라마가 아니야, 오빠.” 3. 지혜도 선생님께 지목이 되었는데 회사에 다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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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취향> -김민철-비소설/국내 2023. 10. 24. 10:42
1. 그렇다. 이 집은 우리의 선언이었다. 과도한 대출을 받아서 비싼 동네에 비싼 집을 사고 그게 오를 거라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 빚을 갚으며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는 삶에 대한 거부, 우리 깜냥의 대출을 받아서 오를 거라는 기대도 없이 나중에 부자가 될 거라는 희망도 없이 지금 잘 꾸며놓고 지금 잘 살겠다는 선언.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우리 둘이 괜찮으면 괜찮다는 우리 삶에 대한 선언. p.29 2. 하지만 로마의 그 카페를 나서면서는 내 마음이 좀 달라졌다. 아니,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 아니라 인사였다.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아니, 내 기분이 좋아지는. 그 인사 하나가 도대체 뭐 어렵다고. 마을버스를 타면서 기사님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기사님이 혹시라도 받아주면 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