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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강금주-비소설/국내 2023. 11. 20. 13:01
1.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열려 있는 문도 잠긴 문으로 보인다.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 문이 열렸는지 잠겼는지 확인할 생각도 못하고 무조건 열쇠부터 찾아 헤맨다. 새로운 출구를 만들려고 벽에 구멍을 뚫는 등 불필요한 노력을 쏟는다. 그러다 결국에는 지쳐 포기하게 된다. 걱정과 두려움이 그처럼 부모의 눈과 마음을 가리게 해서는 안 된다. p.16 2.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기 원하고 ‘지금 그대로의 너도 멋지다’는 인정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p.65 3.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결해주고 싶은 부모는 그 해결책을 통해 아이가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이 무엇인지 항상 철저하게 계산해봐야 한다. 부모의 해결이 항상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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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소설/국내 2023. 11. 20. 12:57
1. 거기에는 답장을 보내지 않은 채 좀 이따 하교할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일어났다. 문득 다시 펼쳐보지 않을 책들의 일렬로 늘어선 등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방을 나섰다. 돌보아야 할 남편과 아이들, 엄마 아빠 동생까지 있는데 유일하게 나한테 없는 건 아내였다....... p.38 2. 물론 밥과 빨래와 청소를 했고 자신을 목둘레가 늘어난 임부복만 걸친 채 이완이 밖에 입고 나갈 셔츠와 바지를 다리는 한편 부족하거나 소진된 살림을 채웠으며, 서울에 돌아가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십원 단위까지 가계의 모난 부분을 두드려 맞추는 데 촉을 세웠다. 그러나 그중 어떤 것도 노동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녀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사들이는 모습만 보였고, 외간남자와 한가로이 티타임을 즐기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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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도미히코-소설/국외 2023. 11. 20. 12:51
1. ‘친구펀치’라고 아시는지. 예를 들어 누군가의 뺨에 어쩔 수 없이 철권을 날려야 할 사정이 되어 주먹을 굳게 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주먹을 잘 보길 바란다. 엄지손가락이 주먹을 밖에서 휘감아 싸는데 그건 다른 네 손가락을 무쇠로 잠그는 것과 같다. 그 엄지손가락이야말로 우리의 철권을 철권이게 하여 상대의 뺨과 긍지를 무자비하게 뭉개버리는 것이다. 폭력이 더한 폭력을 부르는 것은 역사가 가르치는 필연이니 엄지손가락에서 생겨난 요원의 불길처럼 세계로 퍼져 나가 드디어 다가올 혼란과 비참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남김없이 변기에 흘려보내게 되리라. 그러나 여기서 일단 그 주먹을 풀고 다른 네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휘감듯이 쥐어보자. 이렇게 하면 남자 주먹 같던 울퉁불퉁한 주먹이 분위기를 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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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김상아-비소설/국내 2023. 11. 20. 12:48
1. 시간을 길게 늘어뜨린다면, 아주 긴 줄이 되겠지. 우리는 그 줄을 자근자근 밟으며 걸어 나간다. 시간은 늘 공평해서 아기는 자라고, 늙은 개는 더 늙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뒤돌아보면 우리가 나란히 함께 걸어온 발자국이 보인다. 이 발자국을 조금 더 오래 새겨나가기를 바라본다. p.22 2. 하룻강아지여,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 p.54 3. 말 잘 들어서 참 착하네. 우리가 쉽게 내뱉는 한 마디. 그러나 이 말 뒤편에는 내내 소리 없이 참아준 너희의 배려가 숨어 있다. 약하디 약한 너희를 상대로 우리는 스리슬쩍 권력을 맛보며 순종을 강요한 건 아닐까. p.111 4. 세상에 흔한 일이라는 이유로 내 슬픔이 희미해진다면, 세상엔 슬퍼해야 할 일이 단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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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소설/국내 2023. 11. 20. 12:47
1. “남편과 나는 같은 시험에 붙었잖아. 그런데 가족들이 내게만 ”살살 다닐 직장을 들어가야 한다“고 말해. 왜 나는 살살 살아야 하지? 왜 그게 당연하지?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p.19 2. 남자친구의 이름엔 버드나무가 있어. 버드나무는 한국어로도 일본어로도 중국어로도 발음이 크게 다르지 않아. 그 발음이 좋아서, 남자친구의 약간 길고 흰 얼굴이 좋아서, 안경이 잘 어울려서, 자다가 작은 지진이 있을 때면 명치 부분을 단단하게 안고 눌러줘서, 우울해할 때면 판다 동영상을 보여줘서. 대충 그런 이유로 좋아해. 중국인들은 어쩐지 판단에 대해서 쿨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 어두운 방에서 모니터만 빛내며 판다 동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보고 있는 남자친구를 보면 가끔 짠해.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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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부재중입니다. 지구를 떠났거든요> -심창섭-비소설/국내 2023. 11. 20. 12:45
1. 1957년 11월에 우주로 떠났던 라이카는 모스크바의 거리를 배회하던 유기견이었다. 소련 과학자들은 굶주림과 극한의 기온에서 적응력이 좋다는 점에 착안하여 유기견을 붙잡아 우주로 보내기로 했다. 라이카는 다른 개들과 함께 좁은 곳에서 자고 일정한 시간에 식사하도록 훈련받은 뒤 스푸트니크 2호 내부에 묶인 채로 발사되었다. 서거나 앉고 누울 수 있었지만, 뒤돌아설 수는 없는 상태였다. 발사한 뒤에 심박수는 분당 240회로 두 배, 호흡은 거의 네 배 빨라졌고, 냉각장치의 결함으로 실내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갔다. 라이카는 우주에 도달해서 차츰 정상 맥박을 회복했으나, 5~7시간 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우주선 내에는 일주일간 먹을 수 있는 젤라틴 식품이 저장되어 있었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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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비소설/국외 2023. 11. 17. 14:18
1. 현재 그 그림은 특별히 마련된 방에 걸려 있다. 그 방은 예배당과 비슷하다. 그 소묘는 방탄 유리장 안에 놓여 있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감동을 주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데, 이는 그 이미지가 보여 주는 것, 그 이미지가 지닌 의미 때문이 아니다. 그 작품이 감동적이고 신비스러워진 것은 시장 가격 때문이다. p.29 2.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한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이렇게 감시하는 부분과 감시당하는 부분이라는,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두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자기 존재의 모든 면과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을 늘 감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남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그녀 인생의 성공 여부가 걸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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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쳐다보지 마> -마이클 로보텀-소설/국외 2023. 11. 17. 14:17
1. 희망의 샘은 마르지 않는다지만, 나는 샘을 너무 깊이 판 나머지 바짝 말라버렸음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p.16 2. “진정하세요, 여러분.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친구들입니다.” 나는 배너먼이 주의 깊게 택한 표현에 손발이 오그라든다. 신경에 거슬리는 말이다. 거짓된 친밀감, 가식 어린 연대감. 우리 모두가 친구라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지? p.61 3.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오래된 체로키 전설인데,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우리 내면에서 싸우고 있는 두 늑대에 관해 알려준다. 한 늑대는 분노, 질투심, 슬픔, 후회, 탐욕, 거만함, 어리석은 자존심, 그리고 자아로 가득하다. 다른 늑대는 즐거움, 평화, 사랑, 희망, 겸손함, 다정함, 진실과 공감으로 가득하다. 손자가 묻는다. “..